2009년 12월 22일 화요일

영화 이야기

어제는 영화가 보고 싶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엔, 다녀온 곳이 한국이든, 한국 바깥이든 무척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럴 때에는 영화를 봤다. 하루에 세 편 내지 네 편을 꼬박 봤다. 한달이면 당시에 개봉한 영화를 보고 또 보고, 집에 앉아서 영화를 보곤 했다. 그 때 주로 보았던 영화들은 유럽에서 건너온 영화들과 태국이나 베트남의 동남아시아라고 불리우는 곳의 감독들의 영화들이었다.

"퐁네프의 연인들(레오 까락스)"을 보며 "나는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라 물었고, "원스(존 카니)"를 보고 글렌 한사드의 노래 자락에 실린 슬픔 탓에 말을 잃고 지냈고, "시티즌 독(위시트 사사나티앙)"을 보고는 이 버거운 세상 즐거이 살아야지 하는 마음을 가졌다. "빨간 구두"를 보고 지독한 그 사랑에 치를 떨며 Vasco Rossi의 Un Senso를 들었다. 고다르가 생각도, 공간도, 사람도 제 멋대로 만들어 내며 찍은 영화들과 큐브릭이 언제나 까만 바탕을 깔고 만들어낸 색들이 지독하게 숨통을 막는 영화를 내 기준 잣대 위에 놓고 "지독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시클로(트란 안 홍)"에 나오는 양조위를 보며 쉬지 않고 우는 내 마음을 보고, "호텔 르완다(테리 조지)"의 돈 치들과 그의 주변 모습들을 보며 세상을 대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건지 분했다. 대체 맞는게 없다고 생각했다. "애프터 미드나잇(다비드 페라리오)"를 보며, 바보 같은 사람같으니라고, 나 같은 짓만 하고 있네라고 인물들을 타박하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 영화에 나오는 작은 하나 하나가 기억나지는 않는다. 색감과 영화 속에서 흘러다니는 느낌들만 남아있다. 내가 좋아라 한 영화들은 대개 검붉은 색이었다. 검붉은 색, 찬란하지도, 황홀하지도, 마냥 슬프지도, 혹은 마냥 기쁘지도 않다. 무덤덤한 마음들이 흘러다니는 영화들이 많다. 증폭된 마음은 내 것이 아닌가 보다. 어려운 사람이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다. 다른 이들의 고조된 마음을 갖는 대상이 조금은 다르다. 어린 아이의 놀이와 어른들의 아이 때의 흔적에 나는 고조된다. 속이고, 밀고, 당기는 어른들의 놀이에는 익숙치 않다.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는 아이들의 마음에 나는 고조되고, 그 안에서 격앙된 마음을, 느낌을 갖는다. 조금 다를 뿐이지, 나도 희와 노와 애와 락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다.

예전에 봤던 영화들이 떠올라, 다시 영화가 보고 싶어진건, 왜 일까? 예전의 여행 후와는 다른데 말이다. 그저 무료해진건가라고 생각해보지만, 그건 아니라고 또 '되돌아 보는' 내가 말 한다. 지금은 다시 여행을 떠날 때인가, 지금의 상황들이 다소 버거운가 보다. 다음의 삶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시간인데, 참을성이 아직도 부족한가보다. 그런가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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