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2일 화요일

22 Dec> 오지은 - 화華






오지은 - 화華


 

널 생각하면 목이 말라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나
언제나
니 앞에 있어도 두 살을 맞대어도
숨소릴 들어도 왜

널 생각하면 약이 올라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보물처럼 넌

널 보고 있으면 널 갈아 먹고 싶어
하지만 그럼 두번 다시 볼 수 없어

나의 이성 나의 이론 나의 존엄 나의 권위 모두가
유치함과 조바심과 억지부림 속좁은 오해로
바뀌는건 한순간이니까
사랑이란 이름 아래 저주 처럼

널 생각하면 독이 올라
내 맘속 커져가는 네게 짓눌려

다시는 내릴 수, 멈출 수 없는 기차
섣불리 뛰어내린다면 죽겠지

널 사랑해 누구보다 저 끝까지
마지노선 따윈 없어
전하고 싶어 말하고 싶어 너의 세계가
나로 가득 찼으면

바라는건 나의 삐뚤어진
사랑이란 이름 아래 욕심이야

 

가사 참 독하다. "나의 이성, 나의 이론, 나의 존엄, 나의 권위 모두가 유치함과 조바심과 억지부림 속좁은 오해로 바뀌는 건 한 순간이니까"라는 가사는 그 중 가장 끔찍하다. 마음이 지닌 믿음들이 겉치레라는 말 아닌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이 가사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 않는다. "정말?"이란 궁금증을 갖는다. 알면서 묻는 것일까, 모르는 것일까, 상관없는 것일까. 확인할 마음도 없다.




이 노래를 듣는 건, 꽤나 솔직해서다. 공감하지 않지만, 부르는 사람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오지은은 꽤나 솔직하게 노래부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은'이라는 이름이 붙은 앨범들을 듣는다. 무엇보다, 몇 장의 앨범을 내는 모습에서 생각 씀씀이가 부러웠고, 좋았기 때문이다. 솔직한데다, 스스로의 길을 걷는 그 모습이 참 좋다.

앨범에 관한 정보는 http://www.maniadb.com/artist.asp?p=140997 에서 얻을 수 있다.

빛 바랜

빛 바랜 잠바를 입은 아저씨가 터덜 터덜 걷는다. 터덜 터덜 소리가 끊이지 않고, 내 앞에서 생겨난다. 푸석한 머리를 한 아저씨는 차를 피해 힘없는 어깨를 흔들며 걷는다.

옛적 젊은 시절에도 아저씨의 걸음걸이는 터덜터덜 힘없이 늘어진 어깨를 흔들거리는 걸음이었을까?


책 읽기

책 읽기는 빼놓지 않는다.

읽는 책은 거의 매일 바뀐다. 이틀 정도면 한 권의 책은 대개 읽는다. 그래서 책이 자주 바뀌는 편이다. 애초에 명확히 책과 책을 구분하지 않기에, 교과서가 아닌 이상 넓은 범주로 두고 책을 읽으려고 한다. 이 말은 문학과 비문학, 교양서, 경영서, 철학서, 사상서와 같은 문고식 분류로 책을 읽지 않는 다는 이야기이다.

책을 고르는 건, 제목과 서문을 읽고 고른다. 허나 책과 책 사이에 어느 정도 관계가 읽는 책을 읽는다. '올리버 트위스트(찰스 디킨스)'를 읽으면, 그 당시의 산업혁명에 관한 역사를 조금 읽고, 벤담이나 밀에 관한 부분을 조금 더 읽고, 그 이후의 기술사를 읽거나, 소공자를 읽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정신없는' 책 읽기를 하면 좋지 않다는 말도 있다. 이는 각 분야에 따라 책읽기 방식이 다른데, "서로 다른 서술 방법을 같은 방법으로 읽는 건 아니야?"라는 질문일 수도 있을테다. 어차피 책이 쓰이는 방식은 '같은 분류'라 해도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분류하기에 따라 책 읽기를 결정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서문을 읽는다. 서문을 읽고, 역자의 소개를 읽으면 "이 책은 어떻게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하나의 주제, 혹은 시대상, 어떤 흐름을 읽는데 방법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애초에 책을 읽는 다는 건 어떤 이의 생각을 만나는 셈이니 "어떤 분류의 책은 어떤 책 읽기"를 해야해라고 하는 건 무의미 할 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요즈음 어떤 마음으로 지내는지는 책을 보면 대강 알 수 있다. 관심사는 분명 내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오늘의 책은 http://book.filltong.net/isbn/890806009X "시지프의 신화 (알베르 까뮈, 범우사)"다.


내 문제는 책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주요하다 싶은 문장을 필통에 올린다. 하지만 아무리 적어도 내 생각이 아닐 수 있다. 이해하고, 동의 하지만, 내가 까뮈가 아닌 이상, 까뮈와 내 생각은 다른 부분이 분명히 있다. 이제 이 상황에서 내 생각을 적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 사람의 생각을 정리를 하며, 내 생각을 덧붙여야 하는지, 내 멋대로 쓰다가 괜찮다 싶은 문장 몇 몇을 더해야 할지와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 않는게 더 큰 문제이긴 하지만, 두 방법 모두 해보고, 내가 마음 편한 글쓰기를 해야겠다.

어찌되었든 생각을 글로 적는 다는 것도 복받을 일이다.

영화 이야기

어제는 영화가 보고 싶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엔, 다녀온 곳이 한국이든, 한국 바깥이든 무척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럴 때에는 영화를 봤다. 하루에 세 편 내지 네 편을 꼬박 봤다. 한달이면 당시에 개봉한 영화를 보고 또 보고, 집에 앉아서 영화를 보곤 했다. 그 때 주로 보았던 영화들은 유럽에서 건너온 영화들과 태국이나 베트남의 동남아시아라고 불리우는 곳의 감독들의 영화들이었다.

"퐁네프의 연인들(레오 까락스)"을 보며 "나는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라 물었고, "원스(존 카니)"를 보고 글렌 한사드의 노래 자락에 실린 슬픔 탓에 말을 잃고 지냈고, "시티즌 독(위시트 사사나티앙)"을 보고는 이 버거운 세상 즐거이 살아야지 하는 마음을 가졌다. "빨간 구두"를 보고 지독한 그 사랑에 치를 떨며 Vasco Rossi의 Un Senso를 들었다. 고다르가 생각도, 공간도, 사람도 제 멋대로 만들어 내며 찍은 영화들과 큐브릭이 언제나 까만 바탕을 깔고 만들어낸 색들이 지독하게 숨통을 막는 영화를 내 기준 잣대 위에 놓고 "지독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시클로(트란 안 홍)"에 나오는 양조위를 보며 쉬지 않고 우는 내 마음을 보고, "호텔 르완다(테리 조지)"의 돈 치들과 그의 주변 모습들을 보며 세상을 대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건지 분했다. 대체 맞는게 없다고 생각했다. "애프터 미드나잇(다비드 페라리오)"를 보며, 바보 같은 사람같으니라고, 나 같은 짓만 하고 있네라고 인물들을 타박하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 영화에 나오는 작은 하나 하나가 기억나지는 않는다. 색감과 영화 속에서 흘러다니는 느낌들만 남아있다. 내가 좋아라 한 영화들은 대개 검붉은 색이었다. 검붉은 색, 찬란하지도, 황홀하지도, 마냥 슬프지도, 혹은 마냥 기쁘지도 않다. 무덤덤한 마음들이 흘러다니는 영화들이 많다. 증폭된 마음은 내 것이 아닌가 보다. 어려운 사람이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다. 다른 이들의 고조된 마음을 갖는 대상이 조금은 다르다. 어린 아이의 놀이와 어른들의 아이 때의 흔적에 나는 고조된다. 속이고, 밀고, 당기는 어른들의 놀이에는 익숙치 않다.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는 아이들의 마음에 나는 고조되고, 그 안에서 격앙된 마음을, 느낌을 갖는다. 조금 다를 뿐이지, 나도 희와 노와 애와 락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다.

예전에 봤던 영화들이 떠올라, 다시 영화가 보고 싶어진건, 왜 일까? 예전의 여행 후와는 다른데 말이다. 그저 무료해진건가라고 생각해보지만, 그건 아니라고 또 '되돌아 보는' 내가 말 한다. 지금은 다시 여행을 떠날 때인가, 지금의 상황들이 다소 버거운가 보다. 다음의 삶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시간인데, 참을성이 아직도 부족한가보다. 그런가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2009년 12월 21일 월요일

21Dec> 넬 - Thank you





Shortly I said, 'Thank You'.
Nothing to say, however, I just have to say this one thing, "don't make me wait too long".


넬은 2008년 공연을 끝으로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그들은 2년이 되는 2010년 겨울 쯤이 되면 다시 공연을 시작할테다. 기다린다. 기다린다는 건,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다.

미디어 아트

미디어아트

 

미디어라는 말은 무엇이며, 아트라는 말은 무엇일까?

 

미디어라는 말을 조금 적확하게 바꾸어야 한다. 미디어는 매체라는 말로써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을 의미한다. 인쇄, 녹음, 출판 등의 수단으로서 매체라는 말이 쓰인다. 그리고 기술적인 차이에 의해 전자 매체가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예술의 수단으로써 매체, 즉 미디어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다양한 콘텐츠를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에서는 읽기, 쓰기, 보기, 듣기 등의 한 가지에만 특화된 기존의 미디어 형식을 사용하며, 또 이 형식들을 합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미디어라는 말 대신 멀티미디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1]

 

사실 멀티미디어라는 용어는 모호하다.[2] 개인이 컨트롤 할 수 있고, 또한 미디어는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는 멀티미디어로 나아가며, 이 의미는 미디어들이 함께 사용되고, 한 자리에 놓이는 것으로 변해왔다.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기록들의 변화를 생각해보자. 예전에는 기술적인 한계, 즉 전송과 저장의 한계를 이유로 문자들만 기록이 가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래픽, 음성, 영상, 음성과 영상의 합, 움직이는 영상들이 사용이 가능해졌고, 이제는 각각의 다른 페이지에서만 가동되던 것이, 하나의 페이지에서 모두 사용이 가능해졌다.

 

또 예술은 무엇일까? 예술의 의미는 끊임없이 사람들에 의해 규정되고, 바뀌어왔고, 버려지고, 되살려졌다. 예술에 대한 느슨한 의미 하나만을 생각하도록 하자. 이는 예술의 의미는 아니다. 예술의 의의, 혹은 기능 정도로 바라보자. 예술은 표현이다. 한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표현해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왜 표현할까어떤 사람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위해서 라고 말한다. 혹은 그저 자신을 기록하는 정도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확실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 의의는 모두가 다를 테다. 그리고 표현하는 사람들은 표현의 방법이 모두 다르다. 그 방법을 고르는 것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거나, 의도적으로 자신의 표현이 가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덩어리가 학자들에 의해서는 규정화된 개념문자에 의해 풀어진다면, 예술가들은 문자 혹은 문자 그 외의 방법들에 의해 풀어지는 셈이다. 그리고 이 방법들이 기술의 발전을 통해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풀어지는 것이 바로 미디어 아트다.



[1] «The History And Development of Multimedia»에 따르면 “the seamless digital integration of text, graphics, animation, audio, still images and motion video in a way that provides individual users with high levels of control and interaction”이라 현대의 미디어를 정의한다.

2009년 12월 18일 금요일

여행에 대한 질문들


'오래된 미래'를 읽고, 보고, 인류학계통의 민족기술지나 여행기들을 보면서, 일종의 여행 후, 여행지에 대한 기록이나 정리가 부정적인 여지도 존재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해요.

특히, 철저히 타자의 입장에서 '관찰'한 모습을 옮기는 것도 위험하다는 생각을 해요.
그 문화에서 사는 사람들도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궁금해 할텐데, 생각을 갖지 못하는데,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 그네들 생각대로 기록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론 상으로도 이 문제에 대해 해결이 되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기록 탓에 '여행지의 대상이 되어버리면'
그 순간 그 문화들은 다른 문화,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여행 후에, '어디로' 여행을 다녀왔어라는 말을 하는게 위험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에요.
(여행을 다녀 온 후에,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정리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들어있는 것 같아요.)

유입되었다 가정해보면, 이 후에는 '문화' 간의 힘 싸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돈'이라는 녀석이 있는 것 같아요.
시장 중심인 세상 사람들이 전파한
"'돈'이 있어야 산다"는 이야기와 "잘"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와 생활 양식들이 전해지는 건 아닐까요?

'자본'이라는 녀석이 들어오면서,
슬프게도 자본의 힘에 굴복되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앞에서 전해지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는 돈이 삶을 결정하는 수단이 되었다라는 가정을 한 셈이에요.

돈이라는 녀석이 없다면,
다르게 표현하면 '여행 오는 사람이나, 여행자를 만나는 사람이나'
돈에 구애받지 살만하다면, 문화 간의 조화도 가능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 문화 간의 힘 싸움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말이에요. -
(순서가 뒤죽박죽이라 어려워요. 혼자 풀어보려 애쓰니 머리가 깨질 것 아파요...^^;;)



이런 생각들 탓에, 요즈음 말해지는 '착한 여행'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숙제에 들어섰습니다.


공정여행, 책임여행, 좋은여행 등의 것들이요. 결국 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나누느냐 하는 문제인데,
결국은 돈으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하지 않나 하는 거친 생각도 있고요.

(그리고 명확치는 않지만 "개념", "실제 행위", 이 두 가지가 왜 영향을 미칠까 하는 궁금증도 있고요.)


비약적이라서,
이 근거들을 더 자세히 찾아보는게 숙제인 것같아요.

자기 여행

책임여행, 공정여행, 착한여행으로 일컫어지는 여행들을 보면, 대개는 기존의 상업적 여행을 뒤집어보는 여행을 한다. 트래블러스 맵의 경우, "http://map.haja.net/zbxe/", 아시안 브릿지의 경우, "http://www.asianbridge.asia/"가 있다. 그렇지 않은 예도 있다. 지금 여행을 하는 힙합하는 실버라이닝(http://cafe.daum.net/ahimsa)의 박하재홍 씨(이매진피스: http://www.imaginepeace.or.kr)의 경우는 다르다. 자기 여행을 하고 있다. 공정여행의 지향은 더 나으리라 여겨지는 '여행 상품'을 만드는게 아니라, 상품을 통해 여행객을 '여행자'로 만드는게 아닐까 한다. 애초에 좋은 여행이란 자신이 만든 방법의 여행을 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래 저래 패키지 형식의 짜여진 여행보다, 대개의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여행이 필요하고, '-여행'등의 역할은 자유로운 여행자가 되기 위한 단계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돈 쓰기에 종속된 상품의 개발에 머무르면, 결국 토마스 쿡의 여행의 미래인 지금의 패키지 여행과 같아질 것 같다.

여행 떠난 후

내가 바라보는 것들에 대한 기록을 해야 한다.
일정한 틀들을 이용해보는 건 어떨까?

민족기술지의 방식과 사회과학과 정치에서 사용되는 각 국가에 대한 분석틀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명확한 생각과 소스들은 아직 없다. 준비는 1월 중순이 넘어서부터나 시작 해야지. 그래도 종종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이렇게 정리한다.

혹은 축제를 분석할 때 쓰이는 틀도 찾아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문화를 어떻게 정리하는지를 살펴보자.

명확한 소스를 찾고, 이용하는 법을 배우면, 이 것 역시도 좋은 배움일테다.

그리고 결과를 가져야지. 그리고 타인에게 조언을 들어보아야겠다.

이래저래 기대되는 2월이다.

2009년 12월 17일 목요일

착한 여행, 여행을 규정하는 것에 대한 짧은 단상

여행이 착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 착한걸까?

공정여행
누구에게 공정한 여행일까?
착한 여행보다는 공정여행이 나을지 모른다. 관계 안에서의 '공정'을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책임여행
되려 이 표현이 나은 듯 하다.
공정여행의 발상은 관계를 중시한다고 여겨지는 우리네 문화가 영향을 미쳤다.
책임여행은 되려 개인 스스로의 책임감에 대해 강조하니 영국문화권의 영향인지 모른다.

하지만 착한 여행, 공정여행, 책임여행, 이 모두는 정말 옳은 것일까?
이건 질문이다. 스스로가 찾아야 할 질문이다.

여행을 규정하는 것에 대해 옳고 그름을 생각하는게 우선일 것 같다.
되려 공정여행의 가이드라인이 나온 후, 나 스스로는 내가 이 10가지 가이드라인에서 어기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찾게 되었다. 여행이 '가이드라인'에 의해 재단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갖는다.

가이드라인은 좋지만, 이는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나름의 '규칙'이 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여행을 권할 때, 여행의 방식을 권할 때, 나는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까?

여행은 분명 긍정적일 수 있지만, 부정적이다.
여행은 일종의 관찰이다.
타자를 바라보기 위한 관찰행위이다.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관찰행위이다.
이는 철저히 서구적인 사고 방식이긴 하다.

우리네 사고방식으로 치면, 친구를 만들고, 친구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다.


헷갈리긴 하지만, 정리해 볼 필요가 있는 주제이다.

단상도 아니고, 다음에 이 주제로 공부를 해보려고, 생각나는대로 마구 적은 것이다. 논리도 없으며, 주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단지 정리되지 않은 내 생각에 대한 기록이다.

2009년 12월 16일 수요일

여행 계획> Laos (미정)

* Travel Planning
Participants
Yoo (traveler)

How Long
2010년 2월 - 3월 (20여일)
About Twenty Days (Mid Feb, 2010 ~ Early Mar, 2010)


Route (undecided)
Bangkok (TH) - Viantien (LA) - [not yet decided] - Yunnan (CH)
Bangkok is a meeting point. And then we will travel northwards to Yunnan, through Laos. Main travel point is three or four cities of LAOS in twenty days.

Transportation
Basically, (strictly) we will use a local transportation system. And ,without urgent situations, we have no plan to use flights.
ICN - BK (CX), BANGKOK - VIANTIEN (LOCAL Transportation), VIANTIEN - Yunnan (Local Transportation)


Purpose & Aims
1. '선재랑 떠나는 여행'의 인도 여행은 올 해를 끝으로 마칩니다. 이제 그 다음 여행을 생각해 볼 때인가 봅니다. 그 다음 여행지를 찾기 위해 먼저 여행을 떠나봅니다. '평화로운 여행'의 인도 이야기들을 닫고, 다음 이야기를 시작할 차례입니다.
2. 여행이 무언지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 떠납니다. 요즈음 대세가 된 '공정여행'의 개념에 대해서도 조용히 생각해볼 여유를 갖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여행을 갑니다. 여행의 '기간'에 따라 내 여행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를 지켜보려고도 합니다.
3. 식민지의 경험을 가진 국가들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특히나 식민지의 경험이 녹아있는 사람살이의 모습들, 즉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전문적인 연구자도 여행자도 아닙니다. 하지만 작은 경험을 통해, 앞으로 해야 할 공부의 방향을 잡고자 합니다.
4. 종교와 국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아마 종교 시설의 역할에 대한 스케치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5. 공산주의의 경험에 대해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아직 많은 여행자가 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많은 여행자가 여행 중이고, 계획 중이라고 합니다. 여행을 통한 문화의 자본화 혹은 제도를 통한 관광자원의 관리 등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관광"자원화는 제가 궁금증을 갖는 가진 주요한 토픽 중 하나입니다.

1. to re-definite the meaning of travel: responsible travel, fair travel(KR), eco-tourism and etc.
2. to see the relationship between traveler and social structure (religious country,  post colonial country, communism experiences, and unique experiences in their own history)


TO DO
* Search for (Before 20FEB)
History of Laos
Current Political Structure and basic information: population, cultural sources(popular & traditional arts, and human environment & nature), religions, infrastructure of information and technologies, and ETC.


FOCUS
Post-Communism Society
Colonial life and and their experiences (common / uncommon)
Children's life (especially, games, they plays and their usual habits)
Traditional culture and their own changes through Capitalism Flows
National Infrastructure

Cost
Flight Fee: around $500
Day Cost (Sleeping, Eating and ETC.): average $20/day (total $400)
Transportation: $200

TOTAL COST: Around $1100 (ESTIMATED)




I am "just a traveler".


* 혹시 LAOS를 여행한 경험이 있으시거나, 경험에 대해 잘 알고 계신 분들, 위의 purpose / aims 부분과 그 이외의 부분에 관한 조언 해 주실게 있으시면 댓글 혹은 연락 주세요.
* If you have any experiences related in 'TRAVEL IN LAOS', please contact me. Send an e-mail (below).



여행의 기술
여행 전이나, 여행 후에나 다녀온 여행지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다른 이에게 말하지 않는다.
동의를 구하지 않은 몰래 카메라 식의 촬영은 하지 않는다.
기록한다
그리고 기록은 정제되지 않을 때까지 공유하지 않는다. 허나 공유해야 할 시점을 놓치지 않는다.




JAYCI KEITH / 김소준철

Mobile: +82(0)10.9291.1859
E mail: jfly2u@gmail.com
SKYPE: jfly2u
http://goer.textcube.com
http://twitter.com/thinkist
http://me2day.net/thinkist

2009년 12월 13일 일요일

Google Calendar와 MS-OUTLOOK 연동하기


Google Calendar와 MS-Outlook 연동하기


위의 주소로 가면 Google Calendar Sync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설치 시에는 아웃룩은 꺼둬야 합니다.

Option으로는 위 그림에서 보듯이, 2-way (G.C. 와 MS.O의 상호 연동), 1-way (한 쪽의 정보를 한 쪽으로만 보내는 연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글이 깨지지도 않고, 정보가 손실 되는 경우도 아직은 없습니다.


Tip>

Tip으로는 G-mail에서 Setting - Labs에 들어가서 Calendar 사용을 enable하면 G-mail에서도 일정 확인이 가능합니다. 실행 화면은 아래와 같습니다.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과 관련된 온라인 기록들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과 관련된 온라인 기록들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350ppm까지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의 공간입니다. http://www.350.org/ 영문자료이지만, 정리가 잘된데다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350PPM까지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에 관해 주요한 자료들이 있습니다.


히옥스(http://filltong.net/sibylle)님은

http://350.org 물론, http://avaaz.org http://www.greenpeace.org 빼놓을 수 없지요. :)”

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이버 녹색연합을 통해서 (http://www.greenkorea.org/) 관련된 한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의 기사(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76400&PAGE_CD=&BLCK_NO=&CMPT_CD=A0101)를 통해서도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이버녹색연합의 (http://www.greenkorea.org/zb/view.php?id=activity_news05&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7) COP15 관전포인트 15라는 글입니다. 이 글을 읽어보면 이슈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낮추는 것만큼이나, ‘탄소배출권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히옥스님이 작성하신 http://filltong.net/tocs/21523에서는 미국과 중국과 같은 국제관계에서 힘이 센나라들과 힘이 약한 나라들간의 입장차이에 대해 기술한 신문기사 발췌와 관련된 영문 기사를 링크시키고 있습니다. http://climateaction.tistory.com/294라는 기후변화행동연구소의 글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이 글은 역사상 가장 난해한 대화로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을 지칭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적습니다. 또한 http://www.sealthedeal2009.org , http://tcktcktck.org 이 사이트들에서는 지구별에 사는 여느 나라의 사람들이 '코펜하겐'의 실질적인 협약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온라인 상의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참여도 부탁드립니다.

 

또한 필통넷(http://filltong.net)에서는 http://club.filltong.net/seed/21606을 통해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에서 실질적인협약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뜻에서 온라인 촛불달기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단지(http://filltong.net/danjida)님께서 만든 촛불 배너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저도 짬내서 촛불 사진 만들었습니다. 최근에 극도로 공격받는 인권에 대한 주장도 더하기 위해, 앰네스티의 촛불 로고에 "PROTECT HUMAN RIGHTS"도 적고, UNDER 350도 적고 말이지요. 제가 수정한 배너는 여기에 http://club.filltong.net/selfgraphy/21613 있습니다.


<12월 12일>


달크로즈(http://me2day.net/dalcrose) 님의 추천으로 Guardian 지의 http://www.guardian.co.uk/environment/copenhagen 를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http://www.guardian.co.uk/environment/interactive/2009/dec/07/copenhagen-climate-change-carbon-emissions 에서는 interactive 기사로 (신문사에서) a complete guide래요, 훗. 그런데 정말 정리 잘 되어 있어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2월 13일>

2009년 12월 12일 토요일

1212 이 후의 멋쟁이 정치인들, 돈과 건축, 관계의 학자들; 아저씨들.

소개: 30년 전 오늘, 대머리 아저씨와 그 족속들이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30년이 지난 이 후, 아마 군사 쿠데타보다 더 아플 욕심 가득한 이들의 '자연'을 상대로 한 쿠데타를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30년 전, 머리 빡빡 민 아저씨와 물컹물컹한 목소리를 가진 아저씨는 '하나회'라는 이름의 군인 아저씨들 모임을 데리고 군사 정변이라는 걸 일으켰다. 큰 아빠인 미국이 인정을 했네 안했네, 작은 아빠인 최규하가 시켰네 안시켰네라던지 아직까지도 별별 말이 많다. 게다가 광주에서 빨갱이를 잡았다고 친절하게 거짓말을 한 그들은, 몇 년 동안 '80년 5월의 광주'에 대해서는 아주 '말'도 못 하게 했다. 저 아저씨들은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대통령으로 맹세를 하고, 장관으로, 정치인으로, '지도층'이라고 불리는 그 자리에 모두 앉았다. 몇 몇은 퇴출을 당한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어차피 군인들은 '산 사람'만 데리고 간다.

   친절한 대머리 족속 지도층 아저씨들은 이리 저리 돈 많은 놈들한테는 '니네가 살아야지? 그리고 우리도 살아야지?'라면서 커다란 뒷주머니를 만들고, 최고의 업적인 '3S' (Sports, Sex, Screen) 정책을 내보였다.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묘약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Olympic도 개최하고, 올림픽을 할 수 있게끔 돈 없는 거렁뱅이들을 모두 쫓아내고, 새로운 주거지역을 여럿 만들어낸다. 길도 닦고, 건물도 새로 짓고 말이다. 그들은 사회를 보기 좋게 만드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다. 마치 옛날의 백정들과 천민들이 모여 살던 자그마한 산동네같은 곳이 여럿 생겨났다. 그렇지만 그 곳은 '큰 길'과는 떨어져 있다. 역시나 대로에는 보기 좋은 것들만 있다. 그러면서 뒷주머니 만들어 준 아저씨들과는 '돈'과 '돈벌이'를 바꿔주는 그들은 탁월한 로비스트였다. 애초에 뒷주머니 만들어 준 아저씨들하고, 하나회 아저씨들하고, 이 둘의 이야기를 입이 닫히고, 귀가 닫힌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언논'아저씨들까지, 괜찮은 팀이었다. 조큼 지들밖에 몰라서 그렇지, 팀으로서는 괜찮은 팀이었다.

   이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잠깐 한 십여년 동안, 바꿔보려고 두 명 정도의 아저씨들이 시도를 했지만, 대개는 실패했다. 그 사람들은 다른 아저씨들에 비해 꽤나 순진한데다, 진지하게 고민도 할 줄 알았지만, '생각대로 살아지지 않는 다는 생각을 했던 탓인지' 생각대로 하지 않은 것들도 참 많고, 한 아저씨는 아들들 때문에, 한 아저씨는 이래저래 말투부터 FTA라는 카드를 재미없을 때 꺼내어놓은 것이나, 멍멍이 부쉬 아저씨랑 이야기할 때 그닥 모양새 안나게 군인 옵하들을 아프간과 이락에 보낸 것까지, 이런 것들이 이 아저씨들의 흠이었다. 참, 그 두 아저씨들은 올 해 모두 죽었다. 반면에 앞에 두 문단에서 말하는 대머리 아저씨와 물컹물컹한 목소리를 가진 아저씨는 아직도 살아 있다. 아 참, 대머리 아저씨는 전라도 사투리쓰는 아저씨를 죽이려고 했는데, 전라도 사투리 쓰는 아저씨는 복수 안했다. 복수는 킬빌같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아니면 바보같은지도 모르거나, 대머리가 진짜 똑똑했는지도 모른다. 흠, 하긴 3S같은 건, 딴나라에서 들어서 써먹은 거긴 하지만, 어쨌든 잘 써먹은 걸 보면 그 아저씨 똑똑한지도 모른다. 백담사가 그립다.

   아, 그런데 대머리 아저씨랑 그 이 전에 한참 날렸던 '바크 정히'라는 군인 아저씨까지 모두 합쳐놓은 것 같은 이 시대의 천재가 한 명 나타났다. 바보 아저씨가 파울만 크게 날려대서 그런지, 올스타 전에서 그 팀 선수들은 모두 빠져버리고, 로스터에 그 라이벌 팀 아저씨들이 가득 채웠는데, 그 중에서 삽질 잘하기로 소문 나고, 티 안나게 감추는 데 능한 쥑이는 아저씨 하나가 나타났다. 천재다. 그 아저씨랑 같이 사는 아줌마는 다이아몬드도 숨겨올 수 있을 정도로 발가락 사이가 독특하게 벌어져있다고 한다, 이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쉿. 여하튼, 땅파기와 씨멘트 붓기, 양심있는 척 하기, 똑똑한 척 하다가 입 쳐다물기, 비꼬는 새끼 조용히 한 소리 하기, 청렴도평가 오나전 개판 점수 맺은 경찰청이랑 대검찰청이랑에다가 이래저래 시끌시끌한 사람들 꽂아 박기, 귀 막기 등등등 '핫'하고 '엣지'있는 능력들이 많다. 아, 그 아저씨들은 예전에 사람들을 죽어라 두들겨패고, 입을 아주 틀어 막아버리는 바람에 감옥 가고, 욕을 무지 먹었던지라, 이번 아저씨는 사람 때리는 건 몰래 몰래 '법' 핑계 댈 수 있을 때만 한다. 아니면 애초에 사람 때릴 일을 안 만들기도 한다. 이런 걸 보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21세기의 새로운' 20세기 소년일지도 모른다. 아, 21세기에 20세기를 산다는 건 꽤 멋진 일이다. 복고가 멋인 세상이 언젠가 오지 않나. 그리고 '경제'에 대한 주장은 언제나 주요하게 먹혔다. 이게 세상이 시장으로 바뀐지가 조큼 되어서, 어쨌든 돈 벌어서 밥 사먹으려면 '경제'이야기는 누구나 해야되니까 말이다. 거기다가 아까 검찰청이랑 경찰청에 사람 꽂아 박았다고 했는데, 이 아저씨 예전 바크 아저씨랑 대머리 아저씨랑, 물컹물컹 말하는 아저씨하고 나이대도 비슷해서 그런지, '언논' 아저씨들을 이용할 줄도 안다. 아니면 '언논'이나 '뒷주머니' 채워주는 아저씨들이 먼저 빌빌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움, 여하튼 21세기의 20세기 아저씨인 이 아저씨는 꽤 삶이 박복하다. 이리 저리 말만 하면 시끄럽게 구니까. 잘 알지도 못하는 애새끼들과 쥐만도 못한 것들이 떠들어댄다. 뭐 그래도 이 아저씨 20세기 아저씨들 좇아 다른 일 터트릴 줄도 알고, 언논이랑 잘 놀 줄도 알고, 일 벌리는데 순서도 챙길 줄 안다. 20세기 아저씨들보다는 분명 똑똑하다. 그래서 희망을 가진다.

- 멍청하고 짖궂게 쓰여진 글 하나 :: "내가"라는 주어가 없다, 그렇기에 이 글은 그 누구가 쓴게 아니다. 그냥 태어났나보지. 태어난 곳도 제 필요한대로 옮기는, 한 마리의 욕심꾸러기 서생원처럼. 돌아갈 곳이 없을지도 몰라, 그 서생원은.


   희망은 있어, 그럼. 징그러운 구더기도 장 만드는데 도움되잖아, 저 것들도 뭔가 도움이 되겠지. 최소한 이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라는 본보기라도 하나 보여주겠지. 위에 써놓은 것들 중에서 언론과 기업, 자본가 혹은 자본 산업을 하는 이들과 정부의 결탁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들려오는 정치인들의 부패, 기업인들의 로비 소식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전두환과 노태우의 비자금을 떠올리면 된다. 빌어먹지 못할 정도로 멋진 사람들인 그들이 벌을 달게 받기를 바란다. 돈 내고 토끼는 건 그다지 토끼도 안하는 짓이다.

   궁금하다, 깔끔한 숨 크기가 옅은 서생원 아저씨가 얼마나 깔끔할지. 끝없는 공사판 한국, 이런 욕 먹어도 싼 글은 우연찮게 아현동 재개발 지구 공사 현장을 다녀와서, 그리고 광화문 주변을 지나다 붙은 미래에셋에 대한 글을 읽고다. 결국 미래에셋같은 자본산업은, 경제와 시장은 엄격하고 선하다는 가설을 따르면, 애초에 공정한 시장 안에서는 누군가에게 피해주는 짓들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 가설이 틀렸다는 말 아닐까? 그리고 그 행위자들과, 인격적인 하나의 기업으로서의 자본 산업은 자신들을 규제하는 이들과의 '관계'가 미리 형성되지 않으면 좋건 나쁘건 문제를 먼저 일으키지도 않는다. '리스크'는 최소화 해야 하니까. 여하튼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TV 광고만 보고 '와우' 이미지를 가질게 아니다. 시장 안과 시장 바깥에서의 행위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한다. 건설업체에 대해서는 두 말 해서 무엇할까? 작년 2008년도 병무청장의 신년 인사 중에 "우리 모두 '살자 살아 (殺自 殺我)의 마음으로 병무청의 미래를 위해 매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희생을 강조하기 위해 썼을테다, 건설업체들은 사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를 죽여버리는 짓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의 배경이 되는 존재들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를 죽인다는 말은, 희생이 아니다. 자연의 생명줄을 조금씩 갉고 있다는 말이다. 자연은 애초에 내가 나온 곳고 돌아갈 곳이다. 자연은 '나'이고, 너이고, 우리이다. 이 자연을 없애고, 인위의 자연을 세우는 것은 자연을 죽인다는 뜻이다. 학살의 맹아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기술의 힘을 낙관하며 핑계를 대고 있다. 기술은 낙관에도, 비관에도 기대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자연에 대해 가해지는 기술에는 윤리가 필요한 법이다. 자연이 다치면 그 어떤 기술로도 쉽게 건강하게 만들 수 없다. 여하튼 건설업체는 이 따위 짓을 하고 있으니, 이 보다 나쁜 짓은 없다. 다 죽이려 하고 있다.

   아, 1212 이 후나,  2009년이나, 아저씨들이 하는 짓이나, 아저씨들 주변이 하는 짓이나 별반 달라질 건 없다. 하움, 그래도 그 땐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면, 지금은 건설업체와 돈 많은 것들이 쿠데타를 일으킬 뿐이다. 그 땐, 정치 권력을 잡으려고 발버둥을 쳤다면, 지금은 제가 더 잘 사는데 도움되는 자원을 하나라도 더 자기 손아귀에 넣으려고 발버둥치는 셈이다. 그 땐 입을 막을 수 있지만, 지금은 막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땐 일이 터지면 그 일 벌린 놈년들 입 닫아 버리면 됐지만, 지금은 그래봤자 어쩔 수 없어서 일 자체 못 벌리게 하려고 온갖 짓을 다 한다.

   우리, 이런 빌어먹을 인간들의 생각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해야할 건 한 가지 같다.

지치지 말자.






아저씨들만의 세상이 끝나길. 그렇다고 아저씨화된 아줌마들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아저씨와 아줌마, 10대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 XX세대 등으로 분류된 '조직'이 아닌 각자가 각자의 이름으로 즐기며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2009년 12월 10일 목요일

이명박 정부에 대한 '호소'에 지지의 목소리를 더한다: 서명 호소문을 읽고


http://goer.textcube.com/entry/서명-호소문-민주주의수호공안탄압저지를위한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국제서명운동

이명박 정부의 진보적 단체, 민주적 시민들에 대한 공격은 허구도, 허상도 아니다. '민주주의수호 공안탄압저지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http://minju.jinbo.net/)'의 발족도, 한국 바깥의 173명의 사람과 4개의 단체가 국제적 서명 운동에 동참한 것도 이명박 정부의 진보적 단체와 민주적 시민들에 대한 공격을 바라만 보기에 힘들기 때문이 아닌가? [공격이라고 하는게 조금 심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당신들은 분명히 공격하고 있다.]

촛불 시위, 촛불 운동은 "위대한 민중의 힘"이지만, 슬프게도 호소문에 나온 말처럼 '탄압의 확대'로 귀결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위대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내고, 또 들을 수 있는 공간은 모두 '공안'을 이유로 굳게 닫혀 있다. 이는 '민주적 권리에 대한 탄압'이다. 엄연한 탄압이다. 자신들이 휘두를 수 있는 온갖 무기[이들은 눈에 보이는 무기와 보이지 않는 무기, 모두를 휘두른다. 이에 해당되는  내용들은 위에 링크된 호소문에 분명하게 나온다. 그렇기에 따로 적지는 않겠다. 자신들의 의견에 '잠시만'이라는 머뭇거림조차 원치 않는다. '반대'는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웃기는 논리로 대응한다. 애초에 '찬성'이 아니면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과정'이란 '결과'를 위해 줄여야 할 꺼리에 불과하다. '무엇인지 궁금하다'라면 '조선,중앙, 동아, 연합' 등과 같은 '권력 지향적'인 신문을 버리기를 바란다. '한겨레', '경향'이 '정론'지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저 '권력'이라는 단 맛에 푹 빠진 불개미들 보다 낫다. 그리고 '반대'라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반대'자들에게 '빨갱이', '좌빨', '삐딱한 새끼' 등등의 표현을 가져다 붙이는 이들은 집에 가서 중학교 '사회' 책부터 다시 보았으면 한다. 당신들이 좋아하는 교육, 다시 받아야 할 것 같다.]를 시민들에게 휘두르는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물었으면 한다. 그리고 어떤 정부가 되어야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보길 바란다.

헌법에 의해 이명박은 대통령이고, 이명박이 만든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이다. 헌법이 당신을 인정한다. 하지만 당신은 헌법을 어긴다. 사소한 '예외 가능 조항' 하나를 핑계삼아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이 헌법에 의해 진행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기업법'과 당신들이 말하는 'risk'가 적은 효율적인 방법에 의해서만 진행하려고 한다.

제발, 헌법 제2장에 나온 내용들 하나 하나 살펴보길 바란다. 중요한 권리들이 많다. 그리고 그만큼의 의무가 있다. 시민들이 무엇을 어겼는가? 정부는 시민들이 어긴 것은 '질서유지'라고 말한다. 허나 질서유지보다 중요한 것이 있지않은가? 바로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행하는 시민들의 권리 주장이다. 그렇기에 제2장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질서유지' 따위로 치부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우선한 '원인'을 생각해보자. 이명박 정부가 진행하는 일들의 순서를 바라보자. 당신들이 '외적'인 모양새가 아니라, '진지하게' 접근한 일이 있는가? 진지함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과정'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이 시민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당신들은 우리를 '위험'할지도 모르는 가능성에 던져놓으려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겉'으로는 문제 없으니, 그리고 국익을 위해서니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나?

당신들은 헌법을 어긴다. '국익'을 위해서 시민들의 목소리는 '야, 이 새끼야, 그냥 하라는 대로 해.'라는 뜻이 담긴 당신들의 행동으로써 무시한다. 귀 한 번 귀울이지 않고, 당신들의 목소리만 내뱉는 걸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가? 아래에 당신들이 심각하게 어기고 있다 싶은 헌법 2장의 조항들을 적어놓는다. 하나 하나 예를 들고 싶지만, 어긴 것들 투성이라 무어 하나 '잘했다' 싶은 게 없어서 글 적다가 기분 더 나빠질까봐 안적으련다.

이명박 정부가 어기지 않은 헌법이 있는가? 하물며 제37조 "①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②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를 살펴보자. 당신들은 2항 '질서유지, 공공복리'의 내용을 바탕으로 법률을 제한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때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언급이 있지 않나?

당신들이 법을 지키고 있나? 이제 당신들의 법치주의에 대한 언급도 우습다.

제10조 [footnote]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footnote], 제11조 [footnote]①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③ 훈장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footnote], 제12조 [footnote]①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②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③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다만, 현행범인인 경우와 장기 3년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사후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④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⑤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받지 아니하고는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지 아니한다.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자의 가족등 법률이 정하는 자에게는 그 이유와 일시·장소가 지체없이 통지되어야 한다. ⑥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 ⑦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또는 정식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footnote] 제13조 [footnote]①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②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③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footnote], 제17조 [footnote]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footnote], 제18조 [footnote]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footnote], 제19조[footnote]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footnote], 제21조 [footnote]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③ 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④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footnote], 제22조 [footnote] ①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②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footnote], 제27조 [footnote] ①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 군인 또는 군무원이 아닌 국민은 대한민국의 영역안에서는 중대한 군사상 기밀·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군용물에 관한 죄중 법률이 정한 경우와 비상계엄이 선포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지 아니한다. ③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④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⑤ 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footnote], 제33조 [footnote] ①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②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③ 법률이 정하는 주요방위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를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아니할 수 있다.[/footnote], 제34조 [footnote] ①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②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③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④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⑤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⑥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footnote], 제35조 [footnote] ①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②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 ③ 국가는 주택개발정책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footnote], 제37조 [footnote] ①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②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footnote]

조항 하나 하나를 살펴보라. 이 조항들 중에서 당신들이 무시하고, 어긴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대단한 것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당신들이 이 조항을 지켰으면 좋겠다. 그리고 헌법 보다 중요한건 '지지율'이 아니라, 당신의 의견에 대한 진지한 토론의 장이다. 민주주의는 토론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누구도 무조건적인 반대만 할 생각이 없다.

당신은 말만 하는 정치인이 싫다고 하지만, 내가 제일 싫은 건 '귀를 닫은' 정치인이다. 당신 역시 정치인이다. 그리고 '귀를 닫은' 말만 하는 정치인이다. 스스로가 싫은 자가 되어버린 불쌍한 고집쟁이 광대같으니라고, 계속하여 지금의 모습 그대로라면 당신은 평생 남의 목을 죄는 잔인한 배우가 될테다. 마치 얼마 전 생명 하나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죽인 빌어먹을 잔인함이 당신에게서도 보여진다.

이명박 정부의 행태를 반대한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생각해보라. 그리고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권리'에 대해 지금처럼 탄압하지 말라, 공격하지 말라. 귀를 열어라.




- 언급한 헌법 제2장의 세부 조항들

서명 호소문 (민주주의수호공안탄압저지를위한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 국제서명운동)

서명 호소문

우리는 이명박 정부가 진보적 단체, 민주적 시민들에 대한 공격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촛불 운동의 지도적 활동가들에 대한 검찰의 공소를 즉각 취하하고 마지막 촛불 수배자가 된 김광일(다함께)과 강민욱(한대련)에 대한 수배를 해제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촛불 운동에 참가한 단체들을 강경 탄압하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촛불 시위에 대한 경찰 폭력을 조사하기 위해 방한한 노마 강 무이코 국제앰네스티 조사관은 촛불 운동을 “위대한 민중의 힘”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 이 운동은 식품 안전과 민주적 권리가 침해되는 데 우려를 표현하고자 했던 한국의 평범한 대중을 대표한다.

한편, 2008년 촛불 운동에 대한 탄압은 국제 항의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았고, 2009년에는 더 많은 진보단체와 민주적 시민에 대한 탄압으로 확대되고 있다.

올해 한국의 용산에서 벌어진 철거민 5명의 죽음은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탄압이 부른 살인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에 항의하는 운동은 전적으로 정당하다. 이명박 정부는 즉시 용산 철거민 참사 항의 운동 참가자들을 석방하고 강제 연행을 중단하라.

또, 지난 4월 30일부터 5월 2일까지 모든 집회와 시위를 원천봉쇄한 채 시위 참가자들을 무차별로 구타하고 2백41명을 연행하고 이 중 13명을 구속한 것에 대해 분노를 금치 못한다. 경제 위기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들에 전가하고 민주적 권리를 탄압하는 것에 맞서 진보 단체와 민주 시민들이 집회와 시위를 벌이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5월 1일 메이데이는 전 세계 노동자들의 축제이자 기념의 날로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대규모 집회와 행진을 벌이는 날이기도 하다. 유독 한국의 이명박 정부만이 집회ㆍ시위를 가로막고 참가자들을 연행ㆍ체포한 것은 분명 정치적ㆍ시민적 권리를 탄압해 엄청나게 후퇴시키는 것임이 명백하다. 게다가 이에 항의하는 인권 단체 활동가들의 기자회견 참가자까지 연행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평범한 사람들의 민주적 권리를 제약하고 있다는 증거임에 틀림없다.

집회ㆍ시위에 대한 참가는 민주 시민의 온전한 권리다. 집회ㆍ시위 참가자에 대한 무차별 소환장 발부도 즉각 중단하라.

이명박 정부는 민주 시민과 진보 단체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국가보안법으로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사상ㆍ견해 표명의 문제가 결코 탄압과 구속의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초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과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에 대한 국가보안법 탄압을 즉각 중단하고 구속자를 석방하라.

7월 22일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비판적 언론을 길들이고 대기업들이 언론을 장악할 수 있도록 언론 악법을 통과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언론 악법에 반대해 파업한 언론노조를 탄압하고 있다. 지금도 언론노조 위원장과 3명의 노조 활동가들이 재판 중이다. 언론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언론 노조의 파업은 정당하다. 언론노조 탄압을 중단하라.

이명박 정부는 지난 8월, 77일 동안 공장점거 투쟁을 벌이며 대량해고에 반대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살인 진압해 노조 위원장과 활동가들을 무더기 구속했다. 정부는 그동안 공장 안 음식물, 의약품 공급을 가로막았을 뿐 아니라 단수와 단전, 최루액 살포, 헬기 저공비행, 테이저건 발사 등으로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이명박 정부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기본권이 침해당한 데 항의하는 한국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을 폭력으로 짓밟았다. 정부와 기업이 져야할 경영 실패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저항을 반민주적으로 탄압해 온 이명박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이명박 정부와 경찰에게 한국 민중의 민주적 권리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촛불 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구속ㆍ연행자에 대한 공소를 취하하고 수배자를 해제하고 진보 단체에 대한 국가보안법 탄압을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가 반민주적 탄압을 계속한다면, 전 세계의 진보 단체와 민주적 시민들의 더 커다란 항의에 직면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


2009년12월09일


서명에 동참한 이들.



본 호소문은 '다함께 문서자료실'에서 가져왔습니다.[footnote]http://www.alltogether.or.kr/5_resource/1_resource_view.jsp?no=1700[/footnote]

2009년 12월 9일 수요일

민주주의의 모델 (미완)

민주주의의 모델. 정가: 10000원; 판매가: 9500원(5% 할인); YES포인트: 100원 (1% 적립) + 마니아추가적립 안내. 5만원이상 구매시 2천원 추가적립 추가적립이란? ...



데이비드 헬드의 "민주주의의 모델"이 다른 번역자에 의해 출간될 예정이다. 2009년 하반기에 나올 것이라고 예상되었는데, 12월의 첫 주인 오늘까지 아직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데이비드 헬드는 첫째, 오늘날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어디에 입각해있는가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말하는 현상을 주목하면서, 고대 그리스로부터 현재까지 대다수의 정치사상가들이 민주주의 이론과 실천에 대해 '극히 비판적'이었다고 말한다. 둘째, 고대 그리스에서 18세기 유럽과 북미에 이르는 대개의 기록에서 '민주주의'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즉,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는 백년이 안되며, "창조하고 유지하기에 극히 어려운 통치형태"라고 말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그의 눈길을 끌었으며, 되려 당혹감을 자아낸다고 글의 서론을 시작한다. 그에게 이러한 아이러니가 민주주의의 모델에 대한 연구의 시작이었음을 말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는 서론에서 '민주주의'의 뜻을 어원적으로 찾으며, "인민에 의한 지배"라는 개념이 분명해보이지만, 혼돈스럽다고 말한다.

"인민에 의한 지배"
'인민'
* '인민'으로 분류될 사람은 누구인가?
* '인민'에게는 어떤 형태의 참여를 부여하겠는가?
*"참여에 유리한 조건들로는 어떤 것을 가정해 볼 수 있겠는가? 참여의 비용과 이득, 또는 보상(incentive)과 억제는 평등하게 돌아갈 수 있는가?

'지배'
* '지배'의 범위를 얼마나 넓게 또는 좁게 해석할 것인가? 혹은, 민주적 활동의 고유 영역은 무엇인가?
* '지배'라는 말의 범위가 '정치적'인 것에 해당한다면, '정치적'인 것의 의미는? 그것은 법과 질서, 국가들간의 관계, 경제, 가정(家庭) 혹은 개인적 영역 중에서 어느 곳에 적용되는가?

'인민에 의한 지배'는 복종의 의무를 수반하는가?
* '인민'의 지배는 복종되어야만 하는가? 어느 부분에서 복종하고 어느 부분에서 저항할 것인가?
* 자칭 그리고 실제로 '비참여자'인 사람들에게는 어떤 메카니즘을 만들어 참여로 유도할 것인가?
* 어떤 상황하에서 민주주의는 그들 인민의 일부분 또는 정당한 지배영역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강제력을 행사할 권리를 부여받는가?


이 사진은 본 책의 13P 서론에서 분류된 '민주주의의 변형들'이다.

"4개의 고전적 민주주의 모델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 사상, 자유민주주의의 두 유형 - 보호민주주의와 발전적민주주의-, 맑스주의적 직접민주주의 관념', 치열한 정치적 토론과 갈등을 산출해 온 4개의 현대적 민주주의 모델(경쟁적 엘리트 민주주의, 다원주의, 법치적 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를 고찰한다."

'퇴갤' 사건에 관한 몇몇 생각들

`햄스터를 믹서기로…' 동영상 경찰 수사 (http://news.nate.com/view/20091209n11952)

#1
얌체공 | 2009. 12. 09. 17:20 
햄스터를 믹서기로 갈아 죽이는 동영상이 "햄스터 인생 퇴갤"이라는 말과 함께 올라왔다고 한다. 네이트 뉴스 베플을 유심히 보는데, 어떤 사람이 이런 영상 제작의 근원지로 디씨 코갤(코미디 갤러리)를 지목. 디씨를 좋아하는 편인데, 성찰도 필요한 부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사람은 '갤러', '잉여'이기도 하니까.

[출처] 네이트 뉴스

http://news.nate.com/

댓글(5)

  • 고양이

    ... (2009. 12. 09. 17:42)

  • 달크로즈

    ... (2009. 12. 09. 17:43)

  • 날아1

    ... (2009. 12. 09. 17:44) 삭제

  • arbo

    ... (2009. 12. 09. 17:49)

  • 가재JH

    ... (2009. 12. 09. 17:49)



    #2

     날아1 | 2009. 12. 09. 18:06   삭제
    ...이라 쓰고, 입으로는 온갖 욕이 다나오는 지금, 아,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분명 이건 잘못이다. 어긋난 것이다. 무엇으로부터냐는 질문에는 '옳은 것'으로부터라고 답을 해야 한다. 생명에 대한 존중 없는 삶에 대해, 그릇되었다고 분명히 표현해야 한다. 권위와 가르침, 계몽이 아니다. 생명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출처] 얌체공 :: 톡톡 :: 필통

    http://filltong.net/

    댓글(12)

    • 날아1

      '퇴갤'이란 표현, 생명을 앗으며 '퇴장'이라 표현하는 '극적'인 삶 속의 몇 몇 갤러들이 있다. 우리 세상에서 무엇이 그 사람들이 그런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걸까? (2009. 12. 09. 18:09) 삭제

    • 날아1

      디씨에 자주 들어간다. 허나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도를 닦고 내려 온 은둔 고수 행세를 하며, 길 위에서 폼을 잡는 무지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09. 12. 09. 18:10) 삭제

    • 날아1

      그들의 '집중'하는 능력과 '집요'함에는 박수를 치지만, 정보를 '유희' 그 이상으로 사용하지 못 하는 행태에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2009. 12. 09. 18:11) 삭제

    • 가재JH

      저한테 어렵고 어려운 질문인데, 분명한 건 잘못된 건 맞다는 거. 그 다음 이야기들이 참 복잡하네요. 사회의 어느 부분의 문제인데... (2009. 12. 09. 18:12)

    • 날아1

      그리고 온라인 안에서의 생활과 바깥에서의 생활, 이 두 생활에서의 '격차'가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다지 즐겁지는 않다. 온라인에서는 마치 가면놀이를 하는것만 같으니 말이다. (2009. 12. 09. 18:12) 삭제

    • 날아1

      어느 나라에나 '마니아'들은 있다. 어떤 분야에 대해서도 '마니아'들은 있다. 한국에서 '마니아'가 부정적인 의미의 '오타쿠'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로는 '자신의 관심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온라인 외에서는 그런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힘들며, 자신의 관심사를 나눌 사람을 만들기도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 (2009. 12. 09. 18:15) 삭제

    • 날아1

      대개의 분야에 있어서 '표준'적인 삶을 지향하라는 사회의 가르침에 따르지 못하거나, 따르지 않는 경우, 사회와 생겨나는 격차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이 부분은 무척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또 많은 변수들이 존재한다.(2009. 12. 09. 18:16) 삭제

    • 날아1

      "'자기 과시'를 위해 생명을 앗을 수 있다."라는 가설을 세워본다. (2009. 12. 09. 18:19) 삭제

    • 날아1

      그들의 행위가 자기과시가 맞는가? // "왜 자기 과시를 하는가?, 했는가?"라는 질문과 자기 과시의 방법으로서 생명을 앗는 것을 택했을까? (2009. 12. 09. 18:20) 삭제

    • 날아1

      이런 저런 질문들을 또 만들어 본다. (2009. 12. 09. 18:20) 삭제

    • 날아1

      잔인하다, 아주 순수한 잔인함이다. (괴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행위로 볼 때, 희노애락의 희와 락을 잔인함으로 모두 만들어 낸 것 같다. 그래서 말 그대로 티끌없는 잔인함이란 생각이 든다.) (2009. 12. 09. 18:24) 삭제

    • 날아1

      이렇게 적어놓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2009. 12. 09. 18:30)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