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llas 공예정 수업 청강하는 녀석이에요. ^^;; eBook 할 적에 글러먹은 사람 쓴 녀석이요.ㅎ 2010-12-01 14:10:24
이 글은 날아님의 2010년 12월 1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이 글은 날아님의 2010년 12월 1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이 글은 날아님의 2010년 7월 23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이 글은 날아님의 2010년 5월 4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모임 소개
우리는 온라인 학습 생태계 필통넷(http://filltong.net)에 거주하는 사람들입니다. 전파와 케이블이 연결해주는 세상을 벗어나, 목소리와 표정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모임을 갖고자 합니다. 모임은 필통넷 주민들이 사람살이하며 가진 스스로의 질문들을 이런 저런 방법으로 풀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모임 의도
우리는 '청춘'입니다. 푸르른 봄 날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88만원 세대라는 슬픈 이름과 G세대라는 허울 좋은 의도의 이름로 규정되기도 합니다. 어떤 누군가는 우리의 삶이 푸르른 봄 날이 아니라고 합니다. 20대는 88만원 세대도 모자라, 44만원 세대일지 모른다는 우려 섞인 걱정이 떠돕니다. 한 편에서는 '너희의 자신감'과 '다양한 경험'은 대한민국이 좁으리라 부러워합니다. 걱정에는 두려워합니다. 부러움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어떤 곳인지, 지금은 어떤 시간인지, 우리는 누구인지에 대해 역사와 철학, 그리고 문화에 대한 여러 텍스트와 영상들을 통해 공부하려고 합니다.
#방식
세미나는 매 주 다른 주제로 진행되고, '혼자 공부하기'와 '모임을 통한 더불어 공부하기'로 나뉩니다. 주민들은 자신이 가진 질문을 꺼내어 놓습니다. 그리고 함께 읽을만한 책이나, 영상, 소리 등을 알려줍니다.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고, 건네 받은 '같이 알면 좋은 것들'을 스리슬쩍 홀로 느끼는게 '혼자 공부하기'입니다. '더불어 공부하기'는 내 '말'로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죠. 일상을 통해 '혼자 공부하기'와 모임을 통해 '더불어 공부하기'를 하는 것이 주된 우리의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이번 '필통넷 주민 모임'은 연령으로 본다면 10대에서 30대까지, 학제 구분으로 본다면 중학교에 다니는 이부터 대학을 졸업한 이까지, 서로 다른 환경의 사람들이 모여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라는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야기에 곁들여지는 '책', '영화', '음악', '그림'과 같이 '같이 알면 좋은 것들'을 통해 우리 바깥의 타인의 시각에 대해서도 상상해봅니다. 예를 들어, '대학교에 가야하는건가?'라는 질문을 가진 가재의 이야기 시간입니다. 얼떨결에 '재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계속 다녀야 하는지를 혼란스러워하는 날아와 대학을 졸업한 POD와 올 해 갓 대학에 들어간 담_이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을 가재와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Byism이 권해준 로베르 브레송의 '아마도 악마가'라는 영화 속의 68혁명 이 후의 프랑스 대학생들의 모습과, 날아가 권한 이반 일리히의 '학교 없는 사회'의 교육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누는 형식입니다.
10주 간의 기간 동안, 하루 하루 만들어 낸 이야기들은 http://filltong.net 에 기록을 남길 예정입니다.
셀로판지를 한 장 놓고, 비스듬히 또 한 장을 올려놓고, 또 올려놓고, 그렇게 올려놓으면 겹쳐진 부분은 까맣게 보인다. 몇 장은 빼야 한다. 색이 예쁘질 않다. 이게 셀로판지인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손전등을 셀로판지 아래 놓아도, 불을 켜놓은건지 아닌지 구분이 가지도 않는다. 몇 장은 빼야한다.
나도 내 능력을 까맣게 만드는 몇 장의 셀로판지를 빼야겠다. 나는 _하는 사람입니다. 앞에 '무엇'이라는 말을 명확하게 만들어야겠다. "나는 _하기 위한 사람입니다."라는 말에서 나는 "_하기 위한"의 그 무엇이 너무 많았다. 셀로판지의 합은 까만 까마귀색인 것처럼, "무엇"이 너무 많으면 "잘 모르겠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만 낳는다. 나는 "할 게 많아서" 따위의 능력을 주체 못해서라는 류의 말도 안되는 '변명'에다, "다른 거 하지, 뭐" 따위의 말로 도망갈 기회만 가질 뿐이다. 빼내야지. 쓸모있는 자존감보다, 쓸모없는 자존심이 더 커진다.
묘, 비
석, 잔디,
낮은 높이
의 작은 흙담,
말이 없는 이에게
무얼 기대하겠
는가.
앞에 서 기도를 한들
무어가 달라지겠는
가.
그저 바라보고,
마음이나 되씹어보고,
되씹으니 추억이 되고,
질겅질겅 더 씹으니,
이
사이
에 끼인
작은 편린
들 외에는 남는게 없더이
다.
편린
인지
기해린
인지
씹으며 흘려보낸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나 결국엔
남고, 그 흔적들도 사라지고,
남는 건 숫자 하나일세다.
이리
저리
그리
저리
요리
저리
호이
호이하여도, 이름 한 자
기억하며 살겠구나.
- 억의 간, 그리고 기억의 시간 (25.02.10)
하비 콕스(신 학자, 미국)는 '오늘의 세계적 가치 (http://book.filltong.net/isbn/893100558X)' 라는
대담집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이들에게 어린이들을 특정 상품에 옭아매는 업종에 진출하지
말라고, 시장이라는 신의 부하가 되어 이 사악한 목적에 재능을 쓰지 말라고, 아이들을 일찌감치 꾀는 일을 하지 말라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시장이라는 신'의 부하가 되는 것을 "우리를 희생시키면서 심리학 연구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자신들의 상품에 묶어두기 위한 마케팅하는 사람들과 광고업자들의 어린아이와 청소년들의 '두
려움, 취약성, 공포, 희망'을 말해달라는 요청에 의해 '시장이라는 신'의 부하가 된다. 이는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그리고 단지 10대들에 대한 시장에서의 모습만이 아니다.
심리학은
'사람의 마음'을 배우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식의 방법'을 배워, 그것을 역이용하는 법을 주로 익힌다. 그래서 사람들을 유혹할 수
있고, 중독시킬 수 있다. 배운 사람들은 이래서 더 위험하다. 하 나를 더 알기에, 이를 '재능'으로 자신의 욕심만을 위해 사용한다. 특히, 몸 의 욕심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을 해야한다. 노 동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사용한다. 그렇지만 이 사용에 있어서, '편안한 마음의 가치'와 '잘
먹고 잘 사는 몸의 질'의 두 갈래에 선다. 광고와 마케팅
업계에 진출한 이들은 이 두 갈래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몸의 질'을
택한 것이 다름아니다. 마음에 대해 배운 사람이 마음의 가치를 멀리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모든 모습은 애초에 삶에 대해 몸과 마음을 분리하고, 둘 중
하나가 행복해지면 하나가 저절로 따라오겠지 하는 모습에서 기인한다. 몸과 마음이 행복의 균등한 전제
조건이라는 것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먹고 살아야지"라는
변명으로, 마음을 배반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이런 마음은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이 척박한 세상의 가치 인식 탓이다. 배운
적 없고, 배울리 없고, 익힌 적 없고, 익힐리 없는 이 죽어버린 가치는 다시 심리학자들에 의해 더더욱이 파괴되는 셈이다. 어린아이와 청소년들에 대한 심리학자들의 '자 신'들의 몸만을 위한 짓거리에 다시 재생산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1999년 60여명의 심리학자들이 공개적으로 APA(미국 심리학회)의 수장인
Richard Suinn에 게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는 "개 인과 사회의 여건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고자 하며, 대중들이
사리에 맞는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심리학회가 추구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을
현혹시키거나, 잘못 된 길로 안내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한다."는
내용과 함께 "1> 심리학적 기법들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의 마케팅과 광고 시장에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2> 미국 심리학회의 Ethics
Code를 보완해서 어린아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상업적인 목적의 연구와 실천적인 방법에 대해 제한 해야 한다."와 같은 제안도 포함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그 누구도 자신만을
위해 모든 것을 완벽히 행할 수는 없다. 물론 타인만을 위해 모든 것을 완벽히 행할 수도 없다. 그 래서 우리는 공공의 삶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어떤 한 존재의
이익을 대변하려고 하는 순간, 그 선택의 결과는 유쾌하지 않다. 몸이든, 마음이든, 둘 중 하나는 침식해 부서질테다. 마무리를 하자면, 심리학자들의 마치 신으로 여겨지는 '시장'에 뛰어들어 타인을 대상으로,
특히, 어린아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누군가의 이익을 대변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길 때, 그 이익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즉, 제 한 몸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마음에 대한 정보를 이용해서 누군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짓거리는 그만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절제시킬 수 없는 가치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심리학, 그
이론과 응용의 적용에 있어 일정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심리학은 삶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의
기술적인 도구로써, 지혜가 될 수 없는 단순한 돈벌이 혹은 이익을 위한 기술에 불과하지 않을테다.
위 에서 소개한 편지의 원문은 https://docs.google.com/Doc?id=dd9dfbgb_4172sm3s2kj에
서 볼 수 있다.
김C의 이야기, 기자가
탁현민 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탁현민은 이러저러한 공연들을 기획해내는, 좋은 기획자 아저씨라고 생각한다.
[출처]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http://media.daum.net/
혹자는 뭐 이리 말랑말랑해 라고 말하겠지만, 주제와 공연의 실체인 '음악'이 어우러지기 위한 그나마 나은 방법아닐까? (2010. 01. 14. 18:16)
우리는 스스로가 주제를 가져야지, 내 주제를 다른 이에게 던지는
것, 타인의 주제를 내 것으로 가져오는 것에만 너무 익숙해진 건 아닐까? (2010. 01. 14. 18:16)
Red Siren 이라는 일련의 공연도 주목할 만 하다. (2010. 01. 14. 18:19)
이 기사와 이어서 http://www.pressian.com/article/serial_article_list.asp?series_idx=449 'Revolu
Song'이라는 프레시안의 기획 기사도 재미있다. (2010. 01.
14. 18:21)
http://filltong.net/tocs/23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