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6일 금요일

번개

#낭독번개

방에서 나와 책 읽기

(만약 운동회를 못한다면 혹은 다음 기회에)

연락처
(날아 / 김소준철 : 010.9291.1859)

#1 언제 만나서 놀까

시간: 2010년 2월 28일 2시 반
참가자 최소 인원: 3명
먼저 만나는 장소는 홍대 역 4번 출 에서!

그리고 장소 2안 으로 이동합니다.
장소 2안 기억해주세요!


#2 뭐하고 놀까

책 읽고 놀지요.

나도 사실 혼자 조용히 책 읽는게 더 좋아요. 그런데 매번 눈으로만 읽으니까 종종 지루해져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고 말이죠. 게다가 누군가 책을 읽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그래서 다른 이들과 책 읽는 시간이 가끔 필요해요. 서로가 서로에게 책을 읽어주는 그런 시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야기해봅니다. 입으로 읽고, 소리로 읽는 그런 책읽기를 해보면 좋겠어요. 꼭 모두가 읽을 필요는 없어요. 읽고 싶은 사람은 읽고, 듣고 싶은 사람은 듣고, 어떤 규칙에 매이지 않는 그런 책 읽는 시간이기를 바래요.

작은 규칙 정도는 갖는게 좋겠지요? 한 사람이 책을 읽는 시간을 정한다거나, 말을 할 때는 어떤 신호를 한다거나 이런 것들은 같이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준비물은 '읽을 책 한 권'이죠. 더 준비하고 싶은 사람들은 '깔고 앉을 것', '틀어 볼 음악', '먹을꺼리' 정도가 있을테지요. 나처럼 더 더 준비하고 싶은 사람들은 '음악을 틀 때 필요한 스피커', '마이크나 확성기'를 준비하면 될 것 같아요.



#3 어디서 놀까

(예정: 당일 상황을 보고 정하기, 미리 알아보고 연락드릴께요.)

1안> 홍대 앞 놀이터 장소
2안> 동교 치안센터 옆 놀이터
3안> 상상마당 너머 벤치 있는 작은 공원

* 다음로드뷰를 누르면 사진을 볼 수 있어요.

장소 1안> 홍대 앞 놀이터 (다음로드뷰)


장소 2안> 동교치안센터 부근 놀이터 (다음로드뷰)


3안> 상상마당 너머 벤치 있는 작은 공원 (다음로드뷰)



#4 어떻게 놀까

일단 만나서 놀이터에 가서 어떻게 책을 읽을지를 정해봐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고 그 방법대로 책을 찬찬히 읽어봅시다. '즐겁게 놀자'가 '어떻게 놀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인 것 같아요.


2010년 2월 25일 목요일

2월 25일

 

 

셀로판지를 한 장 놓고, 비스듬히 또 한 장을 올려놓고, 또 올려놓고, 그렇게 올려놓으면 겹쳐진 부분은 까맣게 보인다. 몇 장은 빼야 한다. 색이 예쁘질 않다. 이게 셀로판지인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손전등을 셀로판지 아래 놓아도, 불을 켜놓은건지 아닌지 구분이 가지도 않는다. 몇 장은 빼야한다.

 

나도 내 능력을 까맣게 만드는 몇 장의 셀로판지를 빼야겠다. 나는 _하는 사람입니다. 앞에 '무엇'이라는 말을 명확하게 만들어야겠다. "나는 _하기 위한 사람입니다."라는 말에서 나는 "_하기 위한"의 그 무엇이 너무 많았다. 셀로판지의 합은 까만 까마귀색인 것처럼, "무엇"이 너무 많으면 "잘 모르겠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만 낳는다. 나는 "할 게 많아서" 따위의 능력을 주체 못해서라는 류의 말도 안되는 '변명'에다, "다른 거 하지, 뭐" 따위의 말로 도망갈 기회만 가질 뿐이다. 빼내야지. 쓸모있는 자존감보다, 쓸모없는 자존심이 더 커진다.

 

억의 간

묘, 비

석, 잔디,

낮은 높이

의 작은 흙담,

말이 없는 이에게

무얼 기대하겠

는가.

앞에 서 기도를 한들

무어가 달라지겠는

가.

 

그저 바라보고,

마음이나 되씹어보고,

되씹으니 추억이 되고,

질겅질겅 더 씹으니,

사이

에 끼인

작은 편린

들 외에는 남는게 없더이

다.

 

편린

인지

기해린

인지

씹으며 흘려보낸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나 결국엔

남고, 그 흔적들도 사라지고,

남는 건 숫자 하나일세다.

 

이리

저리

그리

저리

요리

저리

호이

호이하여도, 이름 한 자

기억하며 살겠구나.



- 억의 간, 그리고 기억의 시간 (25.02.10)

2010년 2월 1일 월요일

심리학, 청소년과 어린아이들을 위하지 않는 심리학의 사용



하비 콕스(신 학자, 미국) '오늘의 세계적 가치 (http://book.filltong.net/isbn/893100558X)' 라는 대담집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이들에게 어린이들을 특정 상품에 옭아매는 업종에 진출하지 말라고, 시장이라는 신의 부하가 되어 이 사악한 목적에 재능을 쓰지 말라고, 아이들을 일찌감치 꾀는 일을 하지 말라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시장이라는 신'의 부하가 되는 것을 "우리를 희생시키면서 심리학 연구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자신들의 상품에 묶어두기 위한 마케팅하는 사람들과 광고업자들의 어린아이와 청소년들의 '두 려움, 취약성, 공포, 희망'을 말해달라는 요청에 의해 '시장이라는 신'의 부하가 된다. 이는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그리고 단지 10대들에 대한 시장에서의 모습만이 아니다.

 

심리학은 '사람의 마음'을 배우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식의 방법'을 배워, 그것을 역이용하는 법을 주로 익힌다. 그래서 사람들을 유혹할 수 있고, 중독시킬 수 있다. 배운 사람들은 이래서 더 위험하다. 하 나를 더 알기에, 이를 '재능'으로 자신의 욕심만을 위해 사용한다. 특히, 몸 의 욕심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을 해야한다. 노 동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사용한다. 그렇지만 이 사용에 있어서, '편안한 마음의 가치' '잘 먹고 잘 사는 몸의 질'의 두 갈래에 선다. 광고와 마케팅 업계에 진출한 이들은 이 두 갈래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몸의 질'을 택한 것이 다름아니다. 마음에 대해 배운 사람이 마음의 가치를 멀리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모든 모습은 애초에 삶에 대해 몸과 마음을 분리하고, 둘 중 하나가 행복해지면 하나가 저절로 따라오겠지 하는 모습에서 기인한다. 몸과 마음이 행복의 균등한 전제 조건이라는 것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먹고 살아야지"라는 변명으로, 마음을 배반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이런 마음은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이 척박한 세상의 가치 인식 탓이다. 배운 적 없고, 배울리 없고, 익힌 적 없고, 익힐리 없는 이 죽어버린 가치는 다시 심리학자들에 의해 더더욱이 파괴되는 셈이다. 어린아이와 청소년들에 대한 심리학자들의 '자 신'들의 몸만을 위한 짓거리에 다시 재생산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1999 60여명의 심리학자들이 공개적으로 APA(미국 심리학회)의 수장인 Richard Suinn에 게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는 "개 인과 사회의 여건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고자 하며, 대중들이 사리에 맞는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심리학회가 추구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을 현혹시키거나, 잘못 된 길로 안내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한다."는 내용과 함께 "1> 심리학적 기법들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의 마케팅과 광고 시장에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2> 미국 심리학회의 Ethics Code를 보완해서 어린아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상업적인 목적의 연구와 실천적인 방법에 대해 제한 해야 한다."와 같은 제안도 포함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그 누구도 자신만을 위해 모든 것을 완벽히 행할 수는 없다. 물론 타인만을 위해 모든 것을 완벽히 행할 수도 없다. 그 래서 우리는 공공의 삶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어떤 한 존재의 이익을 대변하려고 하는 순간, 그 선택의 결과는 유쾌하지 않다. 몸이든, 마음이든, 둘 중 하나는 침식해 부서질테다. 마무리를 하자면, 심리학자들의 마치 신으로 여겨지는 '시장'에 뛰어들어 타인을 대상으로, 특히, 어린아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누군가의 이익을 대변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길 때, 그 이익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 제 한 몸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마음에 대한 정보를 이용해서 누군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짓거리는 그만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절제시킬 수 없는 가치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심리학, 그 이론과 응용의 적용에 있어 일정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심리학은 삶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의 기술적인 도구로써, 지혜가 될 수 없는 단순한 돈벌이 혹은 이익을 위한 기술에 불과하지 않을테다.

 

 



 

위 에서 소개한 편지의 원문은 https://docs.google.com/Doc?id=dd9dfbgb_4172sm3s2kj에 서 볼 수 있다.

2010년 1월 14일 목요일

김C 인터뷰를 읽다가

C의 이야기, 기자가 탁현민 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탁현민은 이러저러한 공연들을 기획해내는, 좋은 기획자 아저씨라고 생각한다.

[출처]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http://media.daum.net/

 

뚜렷한 주제는 때때로 그 주제의 프레임 속에 갇히게 만든다. 도구가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주제가 옳거나 옳지 않거나 말이다.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으로, 분명하게보다는 모호(?)하게, 상징적이기보다는 함의를 중심"이라는 김C의 의견은 그 프레임에 갇히지 않기 위한 방법일테다. (2010. 01. 14. 18:15)

 

혹자는 뭐 이리 말랑말랑해 라고 말하겠지만, 주제와 공연의 실체인 '음악'이 어우러지기 위한 그나마 나은 방법아닐까? (2010. 01. 14. 18:16)

 

우리는 스스로가 주제를 가져야지, 내 주제를 다른 이에게 던지는 것, 타인의 주제를 내 것으로 가져오는 것에만 너무 익숙해진 건 아닐까? (2010. 01. 14. 18:16) 

 

Red Siren 이라는 일련의 공연도 주목할 만 하다. (2010. 01. 14. 18:19)



이 기사와 이어서 http://www.pressian.com/article/serial_article_list.asp?series_idx=449 'Revolu Song'이라는 프레시안의 기획 기사도 재미있다. (2010. 01. 14. 18:21) 

 

 

http://filltong.net/tocs/23806

2009년 12월 22일 화요일

22 Dec> 오지은 - 화華






오지은 - 화華


 

널 생각하면 목이 말라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나
언제나
니 앞에 있어도 두 살을 맞대어도
숨소릴 들어도 왜

널 생각하면 약이 올라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보물처럼 넌

널 보고 있으면 널 갈아 먹고 싶어
하지만 그럼 두번 다시 볼 수 없어

나의 이성 나의 이론 나의 존엄 나의 권위 모두가
유치함과 조바심과 억지부림 속좁은 오해로
바뀌는건 한순간이니까
사랑이란 이름 아래 저주 처럼

널 생각하면 독이 올라
내 맘속 커져가는 네게 짓눌려

다시는 내릴 수, 멈출 수 없는 기차
섣불리 뛰어내린다면 죽겠지

널 사랑해 누구보다 저 끝까지
마지노선 따윈 없어
전하고 싶어 말하고 싶어 너의 세계가
나로 가득 찼으면

바라는건 나의 삐뚤어진
사랑이란 이름 아래 욕심이야

 

가사 참 독하다. "나의 이성, 나의 이론, 나의 존엄, 나의 권위 모두가 유치함과 조바심과 억지부림 속좁은 오해로 바뀌는 건 한 순간이니까"라는 가사는 그 중 가장 끔찍하다. 마음이 지닌 믿음들이 겉치레라는 말 아닌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이 가사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 않는다. "정말?"이란 궁금증을 갖는다. 알면서 묻는 것일까, 모르는 것일까, 상관없는 것일까. 확인할 마음도 없다.




이 노래를 듣는 건, 꽤나 솔직해서다. 공감하지 않지만, 부르는 사람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오지은은 꽤나 솔직하게 노래부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은'이라는 이름이 붙은 앨범들을 듣는다. 무엇보다, 몇 장의 앨범을 내는 모습에서 생각 씀씀이가 부러웠고, 좋았기 때문이다. 솔직한데다, 스스로의 길을 걷는 그 모습이 참 좋다.

앨범에 관한 정보는 http://www.maniadb.com/artist.asp?p=140997 에서 얻을 수 있다.

빛 바랜

빛 바랜 잠바를 입은 아저씨가 터덜 터덜 걷는다. 터덜 터덜 소리가 끊이지 않고, 내 앞에서 생겨난다. 푸석한 머리를 한 아저씨는 차를 피해 힘없는 어깨를 흔들며 걷는다.

옛적 젊은 시절에도 아저씨의 걸음걸이는 터덜터덜 힘없이 늘어진 어깨를 흔들거리는 걸음이었을까?